그리고 내가 바다 끝에 가서 머물지라도

IV

태어나서 바다를 처음 만난 슈텔러는
...

V

키론시타트, 오라니엔바움, 페테를고프를 거쳐
마침내 네바 강변의 늪지대
토리첼리의 진공 같은 그 텅 빈 공간 속으로
서른네 살의 빈털터리 남자가 도착한다.*
요새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
러시아의 새 수도
방금 도착한 이방인에게는
섬뜩한 인상으로 다가오는
이제 막 시작한 혼돈 자체인 곳
완성과 동시에 비스듬히 가라앉기 시작하는 건물들,
그 어디에서도 똑바로 선 구조물은 보이지 않는다.
황금률에 따라 설계된
도로와 광장, 부두와 다리,
쭉 뻗은 소실선, 파사드, 창열 들은
미래가 메아리치는 공허 속을 통과하며
서서히 다가오는 중이다.
끝없는 공간에 대한 공포심으로 탄생한 도시에
영원의 계획을 건설하기 위하여—
아르메니아인, 터키인, 타타르인
칼미크인, 스웨덴 이주민,
독일인, 프랑스인, 그리고
긴 가로수길을 따라 구경거리로 걸려 있는
살갗이 벗겨지고 사지가 잘려나간 시신들,
고문당해 죽은 범죄자들의 몸으로
인구과잉인 이 도시에.

VI

강 건너편, 마리엔 병원에 있는
...